부끄러운 부끄러움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죠. 님은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셨나요? 어버이날을 낯간지러운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소에 살갑지 않던 자식도 조금 더 질척일 수 있게 핑계를 만들어주는 날이기도 하잖아요. 혹시라도 바쁜 하루에 잊고 계셨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전해보세요.
5월은 어버이날뿐만 아니라 어린이날도 있는 가정의 달입니다. 가족이 다른 관계보다 더 특별한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족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 부모나 형제는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래서 어떨 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어떨 때는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두 책 또한 이 상반된 감정과 관련이 있어요.
오늘은 에세이와 소설을 각각 한 권씩 준비했어요. 첫 번째 해독 주스가 되어 줄 책은 임희정 아나운서의 에세이,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입니다. 일용직 노동자의 딸로서 자란 이야기를 쓴 책으로,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신의 마음을 찾아나가는 수필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 해독 주스가 되어줄 책은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받은 <사라지지 않는다>입니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프랑스 작가 클라라 뒤퐁-모노의 소설인데요,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를 둘러싼 가족을 그리고 있어요. 저도 잘 모르는 책이었는데, 무형서재 팀의 마케터이신 메이님의 추천으로 읽어봤다가 아주 만족해서 이번 레터에서도 소개하기로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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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에세이 #부모님 #가난
📌 최종 학력: 국민학교 중퇴
📌 부모를 부정하는 대답
📌 아비와 어미, 아빠와 엄마, 아버지와 어머니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부모자식 간의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한 분
👉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감정적 부채를 안고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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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가족을 사랑하는 제각각의 방법, <사라지지 않는다>
#프랑스소설 #형제 #장애
📌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
📌 형제를 부정하는 대답
📌 '평범함'을 채워주는 외부인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담백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문장을 읽고 싶은 분
👉 같은 사건을 지켜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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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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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의 저자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주부가 된 어머니, 그리고 국민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하고 일용직 노동자가 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에요. 글을 잘 모르는 부모 아래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서명을 대신한 저자는, 부모님이 작성해 주어야 할 가정통신문의 빈칸도 스스로 채워 넣습니다.
아빠 직업은 뭐라고 써? 응 그냥… 회사원이라고 적어. 그냥? 응.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나이의 엄마도 이유가 간단했다. 나는 순간 엄마가 내 질문에 바로 ‘회사원이야’라고 말한 게 아니라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회사원이라고 적어’라고 하는 말에서 아빠가 회사원이 아닌 걸 알았다.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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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는 해도 어린 초등학생일 뿐인 저자의 어린 시절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을 묻는 문항에 ‘국민학교 졸업, 주부’, ‘국민학교 중퇴, 집 짓는 사람’을 적었다가 선생님께 불려 가 장난치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거든요.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며 저자는 자신의 집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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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며 이 괴리도 점점 커졌나 봅니다. 부모님의 직업을 물어보는 말에 저자가 “건설 쪽 일”이라고만 대답해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건설사 대표나 중책을 맡은 사람을 가정했다고 해요. 대학을 졸업한 것은 당연하고요.
이런 무심한 무례함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유 중에는 저자가 스스로 가진 불안과 의심도 있을 거예요. 다른 아나운서 동료들은 실제로도 부유한 가정환경을 가진 경우가 많았거든요. 남들의 기준과 자신의 꿈을 비교하면서 저자는 거짓과 참, 그 어느 것도 아닌 대답을 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부모’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는 자주 망설였고, 거짓했다. 미적거리고 감출 때마다 내뱉지 못한 말들이 내 안에 쌓였다. 자꾸만 쌓이고 쌓여 갑갑했다. 이걸 어떻게 해서든 꺼내지 않으면 부모가 부정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p.242)
떳떳하지 못한 자기 모습에 저자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혼란과 죄책감의 종착역이 자기연민이었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겠죠. 저자는 이 어려움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묵은 감정을 해소해요. 지난 감정적 충돌이 지금의 저자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주며,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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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6장으로 나뉘어 있어요. 순서대로 아빠, 엄마, 나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아빠, 엄마, 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소제목처럼 각각의 장에서 집중하고 있는 인물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한 가족이고 가까운 관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별도로 존재하는 세 사람 각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계가 불분명한 채로 서로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거겠죠.
내 생의 이야기가 되어준 아비와 어미
자식의 인생을 자신의 희생으로 채워준 아빠와 엄마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준 아버지와 어머니 (p.11)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헌사에 다시 눈길이 가더라고요. 엄마아빠라는 말을 가장 편하게 쓰지만 그 외에도 부모님을 칭하는 말이 많잖아요.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각 단어가 내포하는 분위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고요. 그 단어들을 반복해 사용하며 우리가 부모에게 갖는 복합적인 감정을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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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이 책은 가난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쭉 이어지지만,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 사소한 상황을 떠올리며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아빠, 엄마, 나의 이야기가 한 번 순서대로 나온 후 ‘다시’ 아빠, 엄마, 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유를 생각하게 돼요. 첫 번째 묶음과 두 번째 묶음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지 고민하며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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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 관계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긴밀할 수도 있는 관계가 형제 사이잖아요. 형제의 날 같은 건 없지만,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를 통해서 가깝고 복잡한 세 명, 아니 네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볼까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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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사랑하는 제각각의 방법
<사라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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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느 가족에게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 ‘부적응하다’는 말은 품위가 떨어지는 추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흐느적거리는 몸, 고정되지 않는 텅 빈 눈길이라는 현실을 말해 준다. (…) ‘부적응하다’는 말은 아이가 기능적인 틀의 바깥에 존재하며, 다른 삶들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가장자리에 엄연히 자리 잡고 있음을 뜻한다. 마치 그림의 한구석에 자리한, 불청객이지만 동시에 화가의 의도에 따라 존재하는 그림자처럼. (p.9)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는 ‘부적응한’ 아이의 등장으로 삶이 변한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 그리고 맏이와 누이만으로 이루어져 있던 단란한 가정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며 시작하죠. 보거나 말할 줄도 모르고,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아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뿐. 가족들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지,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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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를 대하는 맏이와 누이의 태도는 다릅니다. 누군가 형제에 관해 물으면 누이는 맏이만을 제 형제로 인정하며 오빠만 하나 있다고 대답해요. 누이에게 아이는 평화롭던 가족에 혼란을 가져오고, 당당하고 멋지던 오빠를 빼앗아 간 존재거든요.
반면 맏이는 온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봅니다. 듣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속삭여주죠. 그런 맏이에게 형제가 몇이냐 질문하면 그는 누이와 아이를 함께 떠올리며 둘이라고 답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에 관해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나오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맏이는 꾀부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둘인데 한 명은 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것이 더 없이 자연스러운 일인 양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에 맏이는 죄책감을 느꼈다. 끔찍한 존재인 타인들에게는 잘못이 없는 곳에 잘못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p.46)
누이와 맏이가 아픈 동생을 대하는 태도는 각각 다른데도, 그 존재를 향해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것만은 닮았습니다. 게다가 그 불편함은 아픈 아이 그 자체가 만들어낸다기보다도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더 안타깝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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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아이들의 할머니를 고를 것 같아요. 비중이 큰 것은 아니지만 누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인물입니다. 아픈 아이에게 맞추고 헌신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온 가족 속에서 홀로 ‘평범함’을 갈망하는 누이의 욕망을 놓치지 않고 보살펴주거든요.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누이도 평범한 아이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가족의 헌신에 동참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누이의 모습은 가족을 외면하는 철부지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소설이 전개될수록 점차 붕괴하는 가족을 다시 끌어올리는 인물도 결국 누이라는 걸 알게 되면 달리 보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끌어내는 힘의 기저에는 여전히 평범함을 향한 갈망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첫 번째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에도 할머니와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나운서의 꿈을 꾸었지만 수강료가 부담되어 망설이던 저자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 목사님이 있거든요. 이 손길은 금전적 도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갖기도 해요. 한순간이라도 돈 걱정을 하지 않고 꿈을 꿀 수 있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두 책 모두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원래의 가족 구성원 외의 다른 이에게서 받는 온기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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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화자가 돌멩이라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은 아니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보아 왔을 그들의 특성 때문인지, 세심하고 자애로운 관찰자이면서도 어딘가 통달한 듯 초연한 문장들이 눈에 띄어요. 덕분에 길지 않고 담백한 문장들로도 섬세한 몰입을 만드는 듯합니다.
👉 인물들의 이름 대신 맏이, 누이, 아이, 막내로만 등장하는 것도 재밌어요. 이런 서술을 선택한 이유가 뭘지도 한 번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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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 모두 세상의 기준과는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더 외롭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끈끈하기도 해요.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아픈 아이를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움과 그런 감정에 갖는 죄책감을 ‘부끄러운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소설에서는 아픈 아이를 향한 감정이었지만,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의 저자 임희정 아나운서에게는 가난과 부모님의 직업을 향한 감정일 수도 있겠죠. 누구에게나 각자의 부끄러운 부끄러움이 있는 것 같아요. 부끄러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님에게도 부끄러운 부끄러움이 있다면 오늘 소개한 두 책이 그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님과 님의 가까운 사람들 모두 따뜻하고 활기찬 가정의 달을 보내길 응원하며 오늘 레터 마치도록 할게요. 그럼 오늘 쌓인 도파민, 해독레터가 싹 풀어드렸으니 오늘 밤은 맘 편히 푹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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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님의 의견이 필요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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