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불법인 세상이 온다면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님께 드릴 해독레터를 쓸 때마다 매번 하는 고민이 있는데요, 왜 많고 많은 것 중에 꼭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으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고민만 하다가는 답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오늘은 반대로 님께 여쭤보려고 해요. 님은 왜 책을 읽으려고 하시나요? 님도 책을 향한 애정, 혹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어쩌면 이 두 가지가 뒤섞인 마음으로 해독레터를 만나신 것일 텐데요. 그 애정 또는 의무감은 왜 생기는 걸까요? 책이 좋다고 다들 염불을 외는데, '무엇'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답변을 조금 도와줄 책 두 권을 가져왔어요. 사람들은 지금도 텍스트를 원하고 있다 말하는 인문학 도서 <지금도 사람들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독서가 불법인 세상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 <화씨 451>입니다. 두 책을 함께 읽고 나면 책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이래서 좋고 이래서 읽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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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좋은 글에 굶주린 당신에게, <지금도 사람들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인문학 #텍스트 #독서
📌 정말 재미로 책 읽는 사람
📌 문해력 말고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
📌 인터넷의 시대에도 책을 찾는 이유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의무감은 느끼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분
👉 내가 텍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찾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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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책이 금지된 세상, <화씨 451>
#영미소설 #디스토피아 #불
📌 불을 끄는 소방수 대신 불을 지르는 방화수
📌 책을 잃은 우리가 잃은 또 다른 것
📌 진시황 없는 분서갱유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정보 전달 외에 책이 가진 능력이 궁금한 분
👉 책이 개인을 넘어서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알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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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에 굶주린 당신에게
<지금도 사람들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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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은 꽤 읽었지만, 항상 작은 아쉬움을 갖고 있었어요. 이런 책의 절반은 독서의 기능적 측면에 치우쳐 독서에 대한 부담과 의무감만 더 키우고, 나머지 절반은 개인적 경험을 나누는 정서적 측면에 기울어 마음은 따뜻해지지만 책이 필요한 논리적인 이유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경우였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다릅니다. 저자 김지원 에디터는 진심으로 ‘재밌어서’ 책을 읽는 사람인데요, 진심은 통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요? <지금도 사람들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독서의 필요성을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면서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의무감이 아니라 책을 향한 호기심과 애정을 키워주는 신기한 효과를 지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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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지금 시대에서 글과 관련한 문제를 이야기하며 빠뜨릴 수 없는 단어죠.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어린아이를 혼내는 훈장님처럼 회초리를 든 기사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저자는 문해력의 의미를 얼마나 빨리 읽는지, 얼마나 완벽하게 읽는지 정도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해요.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전문가는 문해력을 정의할 때 ‘실천’, ‘응답’ 등의 단어를 사용했어요. 글을 읽음으로써 어떠한 형태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뜻이겠죠. 당연한 소리지만 소통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을 신경 써야 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죠. 이 때문에 저자는 문해력이라는 단어보다도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강조해요.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은 자신에게 말 거는 텍스트가 자신의 앞에 당도했을 때 난해하고 복잡한 감정이나 개념도 어렴풋이 느끼고 더 알아보고 싶어 하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 제대로 전하려면 이것이 왜 필요한지, 핵심이 무엇인지 ‘듣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 내는 게 먼저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p.45)
저자는 독자들이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들이 귀를 기울이고 싶은 ‘가치 있는 텍스트’를 읽는 경험을 할 기회가 적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가치 있는 텍스트’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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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살며 글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인터넷에서도 수많은 글을 찾아요. 블로그, 유튜브 설명란, 하다못해 댓글이나 영상의 자막도 모두 글자로 만들어져 있잖아요. 하지만 이것들이 가치 있는 텍스트냐고 묻는다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꼰대 같은 발언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를 가진 말이에요. 인터넷의 텍스트처럼 출처가 명확히 표기되지 않고 여러 사람의 검수를 거치지 않은 글은 ‘신뢰도’와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반면 출판 윤리를 따르고 출판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책에서는 가치 있는 텍스트를 발견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죠.
신뢰도와 영향력 외에도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조직력이에요.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보여드릴게요.
책이 수많은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세련된 지식’ 혹은 ‘지식의 지도’에 가깝다면 인터넷은 ‘정보’의 조각들이 모인 광대한 바다다. 이 바다에서 정보를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p.106)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책은 지식의 지도입니다. 검증된 자료를 구조화해 보여주며 길을 안내하는 거죠. 책을 통해서 우리는 구조화된 텍스트 자체를 얻기도 하고, 방대한 정보를 구조화하며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얻어요. 무작위의 정보만 읽을 때는 갖출 수 없는 능력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이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놓을 수 없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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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저자가 발행하는 뉴스레터 ‘인스피아’는 저도 정말 재밌게 읽고 있는 뉴스레터입니다. ‘읽는 재미’와 ‘한끗 다르게 생각하는 재미’를 원한다면 누구나 좋아하실 거예요. 추천합니다!
👉 정보와 지식의 차이를 더 알고 싶다면 해독레터 창간호에서 소개한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도 추천해요. 스토리 중독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창간호에서 두 번째 해독 주스로 소개하는 책 <꿈을 파는 남자>도 더 이상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책을 파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 관심 있으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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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요즈음이지만 분명 읽는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책을 읽는 사람이 아예 없는 세상이 온다면 어떡하죠? 책이 금지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고전 디스토피아 소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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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씨 451>은 책이 없는 세상에 관한 책이에요. 원래부터 없던 것은 아니고, 책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는 방화수라는 직업이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소방수(소방관)가 방화수라는 직업으로 바뀐 건데요, 불을 끄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책을 숨겨놓은 집을 찾아내 모두 불태우는 일을 합니다. 이 설정만으로 벌써 매력적인 이야기가 기대돼죠.
주인공 ‘몬태그’ 역시 그런 방화수 중 한 명이에요. 경보가 울리면 출동해서 책을 태운다는, 방화수의 임무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몬태그는 어느 날 이웃집의 특이한 소녀 ‘클라리세’를 만납니다. 괴짜 같은 클라리세와 이야기를 나누며 몬태그는 이 세상과 자신의 직업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발견 즉시 소각했어야 할 책을 충동적으로 훔치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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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금지된 세상인 것도 재밌지만, 책을 없애는 수단이 다른 게 아니라 불인 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불은 곧잘 문명의 상징으로 쓰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문명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지성을 오히려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경종일까요?
소설의 배경에서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책뿐이라지만 사람들이 잃은 것은 책만이 아니에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신이죠.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 당신은 낡은 축음기 음반에서, 낡은 영화 필름에서,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책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 속에서 찾아보시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화씨 451, p.136)
책을 잃은 세상 속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 사뭇 다릅니다. 이웃에 살던 클라리세가 괴짜로 취급받던 이유를 살펴보면 참 황당한데요. 그는 목적 없이 걷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길가에 핀 꽃을 살피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상쩍은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은 하지 않거든요. 그들은 속도감 있게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반응만 간간히 해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내달리거나 벽을 한가득 채운 텔레비전을 보는 것밖에 하지 않고요. 이것밖에 하지 않는 건지 하지 못하는 건지 헷갈리긴 합니다만, 내 주변의 상황, 사물, 사람은 살피지 않(거나 못하)는 존재가 정말 사고하고 감정을 갖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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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모든 디스토피아가 그렇듯(그리고 모든 소설이 그렇듯) 꼭 상상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을 거고, 미래에 비슷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실제로 진시황이 책을 불태우고 학자를 생매장하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죠(<화씨 451>의 저자가 분서갱유를 모티브 삼은 건 아닐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아니면 다음 세대에 제2의 분서갱유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두 번째 분서갱유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진시황이 없는 분서갱유일지도 몰라요. 진시황은 과거의 인물이니 없을 것이라는 당연한 소리가 아니라, 진시황처럼 독서 금지를 주도하거나 강제하는 역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들이 사라지는 상황인 거죠. 누구도 먼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사람들한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집어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들을 주입시켜야 돼. 새로 얻은 정보 때문에 ‘훌륭해’졌다고 느끼도록 말이야.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감을 느끼게 될 테지. (…) 사람들을 얽어매려고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을 주면 안돼. 그런 것들은 우울한 생각만 낳을 뿐이야.” (화씨 451, p.102-103)
위 인용문의 ‘사실’이 첫 번째 해독 주스에서 나온 ‘정보’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죠. 소설 속 사람들은 넘쳐나는 사실과 정보에 휩쓸리며 헛배만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책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책을 읽으며 진짜 생각을 했다가는 허기가 질 테니까요. 아마 독서가 다시 합법이 되더라도 다시 책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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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여러 편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으로 다시 엮은 책이라 사실 완결성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에요. 전체적인 스토리보다는 단편적인 장면이나 문장,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해 읽는 것이 더 재밌을 수도 있어요.
👉 책이 단순히 종이책이 아니라 그 이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적었는데요, 님은 책이 무엇의 상징일 것 같나요? 책이 아닌 또 다른 물체가 이 ‘무언가’의 상징이 될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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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소개를 마무리하며 두 번째 분서갱유를 이야기했지만, 실은 이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첫 번째 해독 주스에서 나온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잃지 않는다면 책이 영원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능력은 ‘능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어떠한 기술이나 스킬이라기보다는 ‘마음’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특정 기술을 녹슬지 않게 관리하는 건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마음은 한구석에 품고만 있어도 그 가치를 뽐내잖아요. 이 마음만 다들 품고 있다면 독서 인구는 언제라도 다시 늘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귀 기울일 마음을 품고 해독레터를 찾아주신 님, 오늘 레터 처음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드릴게요. 님은 왜 책을 읽으려고 하시나요? 해독레터에는 어떤 점을 기대하고 구독을 결정하셨나요? 더 맛있는 해독주스를 가져다드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야기이니 답장으로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쌓인 도파민, 해독레터가 싹 풀어드렸으니 오늘 밤은 맘 편히 푹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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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님의 의견이 필요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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