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 인간에게 복수한다면?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이번 주는 밖에 나가기 싫을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졌죠. 그래서 차디찬 겨울에 어울리는, 차가운 소설을 하나 들고 와봤습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스릴러 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예요. 평화롭고도 단조롭던 어느 시골 마을의 겨울에 금이 가게 만든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범죄, 즉 동물 대상 범죄를 조명하며 이제까지의 평화가 과연 정말 평화였을까 의문을 품게 하는 소설이랍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권이 계속해서 화두에 오르는 중이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되며 다시금 관련 주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책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SF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중에서 생태주의와 관련된 두 단편을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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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눈밭 위의 핏자국, 그 옆에는 사슴 발자국?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폴란드소설 #스릴러 #동물권
📌 한겨울의 연쇄 살인 사건
📌 괴짜에게만 보이는 사건의 단서
📌 '모럴(moral, 도덕적인)' 스릴러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인간 혐오적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재밌어하는 분
👉 하얀 겨울처럼 차갑고 건조한 분위기의 글이 읽고 싶은 분 |
🍑 두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소설의 힘,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SF #환경
📌 거대 외계 지렁이가 불러온 파괴, 혹은 기회, <리셋>
📌 괴짜의 주장이 보편적 상식이 된다면, <7교시>
📌 좋은 소설의 완성은 독자의 역할
🤧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 생태주의가 SF 소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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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밭 위의 핏자국, 그리고 사슴 발자국?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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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오자마자 익숙한 추위와 습한 공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매해 겨울 그것들은 세상이 인간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p.12)
소설 초반에서 주인공이 지나가듯 던지는 이 한마디는 매서운 날씨를 불평하는 가벼운 문장이지만, 동시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에 드러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두셰이코’는 폴란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내는 별장 관리인인데요, 평화롭기만 하던 동네에서 시체가 하나둘씩 생겨나며 이야기가 시작되죠. 책을 읽어나가면 하얀 눈밭에 흩뿌려진 빨간 핏자국, 그리고 검은 발자국이 선명히 그려진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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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셰이코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바로 야생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범’인’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겠네요. 범죄를 저지른 게 사람이 아니니까요.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거야.” (…) “ 이건 그렇게 괴상한 이야기가 아니야.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p.113)
이런 두셰이코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두셰이코는 진상을 부리는 나이 든 여자일 뿐이에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반려견 학대나 밀렵 같은 일을 신고하며 성가시게 굴거든요. 두셰이코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제자마저도 그의 주장을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요. 하지만 두셰이코는 자신의 주장에 확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해요.
정말 두셰이코의 생각처럼 야생 동물이 살인을 한 걸까요? 아니면 노파의 헛소리일 뿐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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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이란 그 장르와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범죄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이거든요.
이런 범죄가 일어나게 된 개인의 동기에 집중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가 이런 책을 쓰게 된 동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소설 속에서 일어난 가상의 사건일 뿐이지만 현재 우리의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 고민할 기회가 주어지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모럴 스릴러’라고 규정한다고 해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도덕률에 의문을 제기하고, 어쩌면 새로운 도덕률을 정립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스릴러죠. 굳이 독자의 생각이 바뀌지 않더라도, 당연히 여기던 것을 한 번 곱씹어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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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중간중간 고딕체로 쓰인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그 단어들이 강조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책을 읽어보세요.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옮긴이의 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 좀 더 익숙한 관점에서의 동물권에 관해 생각해 보고 싶다면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함께 읽어보세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피해 사례를 만나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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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두셰이코 혼자 파격적인 생각을 하죠. 독자 입장에서도 주인공의 시선이 아니라 주인공을 이상하게 보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읽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어떨까요? 오히려 두셰이코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일지도 모르잖아요. 인류가 위기를 한 번 맞이한 뒤 재건되는 과정, 그리고 재건된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정세랑 작가의 SF 단편을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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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외계 지렁이가 불러온 파괴, 혹은 기회, <리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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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짧은 이야기 8편이 담긴 소설집이지만 오늘 레터에서는 <리셋>과 <7교시>만 이야기할게요.
님은 지렁이에게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일단 한 번도 없거든요… <리셋>은 우주선에서 내려온 거대 외계 지렁이들이 문명을 파괴하는 이야기예요. 비 온 다음 날 길바닥에서나 가끔 보던 조그만 지렁이들이 갑자기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게 신기하죠. 지금 인간과 지렁이의 관계가 전복된 것 같아 재밌습니다.
짧은 이야기임에도 반전이 숨어 있는데요, 재앙처럼 나타난 지렁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지렁이가 인류에게 어떤 존재인지, 지렁이의 등장이 재앙인지 구원인지 책을 읽으며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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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의 주장이 보편적 상식이 된다면, <7교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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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편 <7교시>는 ‘종차별 금지법’이 생긴 시대를 배경으로 해요. 동물의 신체나 자원을 인간이 이용하는 게 당연시되는 지금과는 다르죠.
2백여 년 전 사람들은 기쁠 때도 위로가 필요할 때도 서로 고기를 사주었다고 한다. ‘고기를 사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옛 영상 자료들을 보면 뜨악했다. 요리 프로그램 자료들은 그로테스크의 극치였다. 사람들은 온갖 동물을 온갖 방식으로 먹었다. 지금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7교시)
과거에는 육식이 보편적이었다는 말을 들으며 소설 속 인물들은 경악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거든요. 실은 채식이 자연스럽다기보다도, 육식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에 더 가까울 정도예요.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 두셰이코가 이 소설의 배경에 온다면 아주 좋아할 것 같죠. 두셰이코도 동물을 착취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거든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는 두셰이코가 괴짜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7교시>에서는 두셰이코의 헛소리가 보편적인 주장이자 상식이 되겠네요. 무엇이 맞다 틀리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떠올려 보면 두셰이코의 주장과 <7교시> 속 설정이 아예 허황된 상상만은 아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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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첫 번째 책의 저자 올가 토카르추크가 이야기한 좋은 소설의 조건을 정세랑 작가의 단편들 또한 충족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을 통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말이에요. 만약 <리셋>이나 <7교시>의 배경이 정말 우리의 미래가 된다면 난 어떻게 행동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됩니다.
좋은 소설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지만, 그 완성은 결국 독자의 몫인 것 같아요. 소설이 꺼내놓은 질문에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건 우리 독자가 해야 하거든요. ‘만약’이라는 가정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이끄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고 한다면, ‘만약’ 이후에 이어지는 것을 님이 찾을 때 비로소 좋은 소설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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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셔보세요
👉 <리셋>은 서술자가 바뀌는 일기 형식을 가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세요.
👉 생태주의가 담긴 이 이야기들이 재밌었다면 <#생태_소설>도 읽어보세요. 생태 소설 단편들이 각 작품의 해설, 그리고 생각거리와 함께 담겨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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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소설을 읽는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요.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 아무런 유익함이 없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소설도 아주 큰 힘을 가진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시선의 반경을 넓혀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요. 물론 지금 당장에 끼치는 영향은 실용서보다 덜할 수 있지만, 소설을 많이 읽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은 정말 유익하거든요.
소설이 주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죠. 주어진 속도에 맞춰 빨려 들어가는 영화와 드라마도 좋지만, 가끔은 나만의 속도로 이야기에 뛰어들 수 있는 소설도 즐겨주세요. 해독레터에서 항상 재밌는 책들 추천할 테니까요. 이번 레터에서 소개한 책들도 맘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쌓인 도파민, 해독레터가 싹 풀어드렸으니 오늘 밤은 맘 편히 푹 주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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